DONUT

내 발이 닿는 곳은 조용히 요동치고 있었다.

 

머리카락도 손가락도 바람을 따라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다들 잠이 들고 몇몇만이 사납게 뒤척이는 이 시간

이곳은 어째서 방보다 밝은가 생각해보았더니,

달이 있기 때문이었다.

달이 너무 밝게 빛나서 사진으로 담으려 했지만 사진 속 그는 좁쌀보다도 작고 힘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사진이라면 현실보다는 밝게 빛나야하는 것 아닌가. 볼품없는 달의 모습에 씁쓸했다.

 

바람이 차게 긁는 것이 … 가을이 온 것 같다.

나만 눈치 채지 못한 건지, 나는 여전히 여름이었는데 말이다.

다리가 주체 없이 흔들리며 디딜 곳을 찾아 버둥거리고 있었다.

발을 딛고 몸을 뻗대면, 지면의 마찰이 나를 받쳐 올리는 게 자연의 법칙이다.

-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정상이 아니야.

 

눈을 감으니 등 뒤로 살아있는 기운이 느껴졌다.

바람에 부딪히며 밟히는 소리를 내는 건, … 나무다.

혼자 우두커니 서있는 나무를 왕따나무라고 하던가.

기구한 운명,

아등바등 남을 이기고 혼자 살아남아도 그런 이름을 갖게 된다.

갑자기 박수를 치고 싶어졌다.

 

 

시멘트 바닥은 차고 딱딱하다.

작년 이맘때, 오늘처럼 달이 가득 찼을 때

온가족이 소원을 빌러 옥상에 올라온 일이 있었다.

어렸을 땐 몰랐지만, 이제 보니 이 집 옥상은 너무 무방비 상태였다.

- 위험하지 않아요? 난간이라도 설치하는 게 좋을 텐데.

- 뭐 하러 그런 걸 … 다른 집 봐봐. 조심하면 안전하다고.

 

그로부터 1년째 되던 날,

그 집 옥상에는 없던 난간이 생겼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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