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단
약을 걸러 골목을 도는 데 금단이 놓였다
비가 오면 제일 가벼운 부스러기만 부유한다
조금씩 건져서 시를 만들면 먼지 같아질까
세상은 도넛 같아
납작하고
뭐가 빠졌다
사람은 퍽퍽한 눈깔을 뜨고
그의 일상을 잘게 빻아서 뿌리면 어떠니
그러면 세상에 슬픔이 켜켜이 쌓일 텐데
썩은 낙엽이 밟히는 것 같이 폭신할 텐데
2017.04.17
2017.01.18
2016.12.11
2016.11.18
2016.11.17
2016.11.04
약을 걸러 골목을 도는 데 금단이 놓였다
비가 오면 제일 가벼운 부스러기만 부유한다
조금씩 건져서 시를 만들면 먼지 같아질까
세상은 도넛 같아
납작하고
뭐가 빠졌다
사람은 퍽퍽한 눈깔을 뜨고
그의 일상을 잘게 빻아서 뿌리면 어떠니
그러면 세상에 슬픔이 켜켜이 쌓일 텐데
썩은 낙엽이 밟히는 것 같이 폭신할 텐데
속에 뭐가 썩었나 보다
상한 냄새가 난다
나는 무섭다. 무서워서 도무지
적으면서도 매일 살아간다
집에 돌아가는 것이 무섭다
틀어박혀 무릎을 끌어안고 있으면
차 달리는 소리 아파트 소음 사이로
창문 열리는 소리가 소름끼친다
포대 자루 던지는 소리가
귀를 마냥 뚫고 들어온다 척추를 타고 흐르며
나의 오래된 두려움을 자극한다
유령에 시달리는 새벽은 지독하고
햇빛이 드는 시간까지 좀이 먹었다
살갗이 뜯긴 붉은 살 상처에서
생동감을 느끼고
나는 어쩔 줄을 모르겠다
확신을 가지고 디딘 발밑에서 지뢰가 터진다
그의 심장에 철근이라도 꽝꽝 박더라도
명명백백한 악의가 나를 잡아먹더라도
목을 맨 형상은 눈 뒤에
눈 뒤에 폐부에 위창자에
눈 뒤에…
속에 뭐가 썩었나 보다
도려낼 수가 없다
도려낼 수가.
-
우리의 감정의 지형이 비슷하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 왔지요. 카페 앞에 앉아 올려다본 하늘에 별이 빼곡했어요. 희뿌연 서울의 밤하늘이었는데도요. 그대가 내 마음에 걸어들어온 건 분명 그 순간이었어요.
서로의 목에 올가미를 걸었지요. 약속의 말들을 꿀꺽 삼켜 뱃속에는 영원이 싹을 틔우고, 하여 그대는 내 속에 죽지 않고 살아갈 거예요. 고단한 하루를 끝맺고 나에게 와요. 다시 곁에 누우면 바깥바람은 우리 체온에 녹아 없어지고 그대 잔잔히 숨쉬는 것을 보며 나는 긴 낮잠을 잘 테에요.
春雨開花何揚而
望位結柹何路傳
誰戀流川脚打水
머리 위로 듣는 빗방울이 봄꽃을 피우매 어느 바람에 그대 앞에 날릴 것이며
기다리던 자리에 나고 익은 단감은 하 어느 길을 따라 그대 손에 가리이까
냇가에 흐르는 것이 오직 그리움뿐이니 발이나 담그고 노니이다
고양이가 말야 작은 고양이가 있었어. 그 고양이는 커다란 짐승에게 몰려서 막다른 골목까지 도망을 쳤지. 이제 도망칠 곳이 없어진 고양이는 발톱을 세우고 꼬리를 부풀리고 사자인 척을 했어. 짐승에게 겁을 줘서 살아남았지.
사자는 고양이의 작은 승리들이었어. 실로 그랬지 고양이는 자신의 생존을 자랑스러워 했어. 하지만 또 고양이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어. 궁지에 몰려서 죽을 힘을 다해 싸우고 싶지 않았단 말이야. 그런데 삶이 고양이를 그렇게 만들었어. 자꾸만.
떠돌이 고양이는 해마다 착실히 나이를 먹었어. 어느 날 수녀님을 만난 고양이는 그 곁에서 꼭 세 번을 울었어.
“무서운 짐승은 몇 번이고 쫓아냈지만 곁에 아무도 없었던 건 참을 수 없었어요.”
“누가 나를 상처 입힐까 봐 울지도 못하고 꾸역꾸역 살아냈던 내가 불쌍해요.”
“나는 더 독하게 살 거예요 매일 매일, 삶이 나에게 그것을 주었으니까요.”
수녀님은 빙긋 웃었어. 빙긋 웃기만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