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UT




  유채

 




햇살이 따스해 기분이 좋습니다
다만 이곳에선 푸른 바다가 보이지 않아
가슴 한 켠이 허전하네요
그대 파도처럼 밀려와 나를 안아주세요

당신의 물결과 그 날의 바람이 훑고간 자리에
대지에 떨어진 유성의 조각을 주어 담아 
내 마음 한 곳에 심어 노오란 꽃으로 피어내
마침내 우릴 뒤덮을 그 별을 한아름 당신에게 드릴게요



| 연필로_강신강 skprojectka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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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이 불어서 그랬어

 



 올해의 첫 봄비가 내리던 날, 하늘을 뒤덮은 먼지가 조금은 없어지길 바라며 길을 걷고 있었어. 집 앞 골목에 접어들었을 때 맞은편에서 두 아이가 걸어오고 있는게 보이더라구. 여자아이가 조금 더 가벼운 발걸음으로 앞장 서 걸었고 그 뒤를 남자아이가 뒤따르고 있었지. 열 살이 채 되지 않아보였어. 둘은 서로 다른 우산을 쓰고 있었는데 남자아이가 우산으로 여자아이 우산을 툭툭 건드리더라구. 그때마다 우산에선 물방울들이 튀어 올랐지. 여자아이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남자아이가 조금 더 세게 치더라.
 
 저 나이 때 남자아이들은 다들 개구쟁이구나- 라고 생각했어. 나도 으레 우산이든 실내화가방이든 손에 뭐만 들려있으면 장난을 치곤 했으니까.

 잠시 26살의 나에게서 멀어져 어린시절 추억 속으로 들어갔을 때, 그 두 아이는 어느 새 말소리가 들릴 정도로 나와 가까워졌어. 마치 그 두 아이가 나의 기억 속에서 나온 것 같았지.

 여자아이가 말했어. 
"야~ 자꾸 왜 쳐~"
 그러자 남자아이가 싱긋 웃으며 말했어.
"내가 그런거 아니야 ! 바람이 불어서 그랬어."

 그 순간 골목 끝에서 아주 느린 속도로 불어 온 바람이 나를 휘감고 지나가는 게 느껴졌어. 언제 들이켰는지 모르게 몸 속에 스며드는 미세먼지처럼, 어른이 되가며 마음 속에 쌓여오던 것들이. 바람과 함께 날아가버린 것 같았어.

 있잖아. 나도 그랬나봐. 바람이 불어서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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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나는 노래부른다

 


허리가 아파
통증이 느껴지는 척추뼈 몇 마디 뽑아 버렸다
더 이상 고통은 느껴지지 않지만 
걸을 수 없게 되었다

방안에 누워
하루종일 천장만 보니 앞이 흐려졌다
눈알을 뽑아 물에 씻으면 괜찮아 지지 않을까
생수로 눈을 깨끗이 닦아 다시 넣었다
이제 앞이 뿌옇지 않다
다만 깜깜한 어둠만이 주위를 감쌌다

배가 고파서
손을 뻗어 주변을 더듬어 보았지만
아무 것도 잡히지 않았다
결국
빈손으로 돌아온 손을 먹었다

걸을 수 없고
앞이 보이지않고
먹을 것도 남아 있지 않다

그래도
목소리는 낼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노래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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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에 다와서야 카드를 두고왔단 걸 알았을 때

 


목적지에 다와서야 놓고 온 물건이 있단 걸 알아차려.
다시 집으로 와서야 들고나간 가방 깊숙한 곳에서 그 물건을 발견하곤해.
 
나의 일상에서 이젠 클리셰가 되어버린 이 장면
짜증나고 답답할 수도 있는 그 순간의 반복 속에서
숨 쉬어 왔는걸.

처음에 나는 그 장면에서 분노를 보았었고
다음 번엔 허무를 보았고
점차 체념을 보고
이젠 웃음을 봐.

문 앞에 다다라서야 열쇠가 없다는 걸 알게 된다면
다시 열쇠를 찾으러 돌아가면 되고
돌아온 곳에 열쇠는 없고 
사실 바지 뒷주머니에 있었다면
'그래 내가 안 챙겼을리가 없지'하며 다시 문을 열러 가면 되잖아.

12시가 지나면 문을 닫아버리는 신데렐라의 세계 속이라 하더라도
그래서 마법이 풀려버린다 하더라도.
유리구두 한 짝을 벗어둔 채 그렇게 또 하루를 보내면 되잖아.
 
그럼에도 기억하고싶은 건, 내가 죽을 때.
바로 그 때. 나를 까먹고 두고 오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거. 달랑 그거 하나.
죽음이 나를 찾아왔는데, 내 인생이 끝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조각해 둔, 정작 나는 없는 그런 인생이 끝난다면,
그땐 더 이상 인생의 어느 지점에 두고와버린 나를 찾으러 갈 순 없으니까.


| 연필로_강신강 skprojectka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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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녘





 저녁 무렵이었다. 그렇지만 세상의 색은 오히려 지금이 새벽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차가웠다. 해가 구름에 가려져 안 보이는 것인지 아니면 이미 수평선 넘어로 넘어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멀리 보이는 시내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연기를 보기 전까진 아무 것도 알지 못했지만, 연기를 보고나자 모든 장면이 다르게 움직였다. 적의 공습이 시작되었다!


 무작정 달린다. 하늘에서 굉음이 들린다. 전투기 소리가 상공을 가른다. 고개를 들어 그 실체를 확인하려는 순간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폭발이 일어난다. 뛰어봐야 소용없다는 사실을 알아 차리고 근처 카페로 피신한다. 대여섯명의 사람들이 이미 카페에 몸을 숨기고 있다. 서로를 부둥켜 안고 벌벌 떨고 있는 모녀가 보인다. 언젠가 본 적이 있는 얼굴이다. 그러나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 창가 근처 테이블에 몸을 바짝 붙인 채로 바깥 상황을 살핀다. 아직 지상군은 투입되지 않은 건가?

 바로 그 순간, 유리창이 깨진다. 카페는 순식간에 비명소리로 가득 찬다. 그리고 그 소리를 쏟아지는 총알이 가른다. 누군가 총에 맞아 쓰러진 것 같다. 길고 높은 소리가 다시 갈라진 공간을 메꾼다. 테이블 아래로 몸을 숨긴다. 형광등이며 컵이며 카페 안의 모든 것이 산산조각 난다. 그리고 정적.


 발소리가 가까워진다. 이내 문이 열린다. 적인가? 아니면 다른 누군가? 다시 비명소리. 아까 그 여자아이의 목소리인 듯 하다. 다시 시작되는 난사. 적이다. 젠장. 살 수 있을까? 들키고 말겠지?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죽은 척하기로 한다. 웅크리고 있던 몸을 움직여 배가 땅에 닿는 자세로 엎드린다. 눈을 감고 호흡을 최소화 한다. 숨을 쉬기 위해 움직임을 멈추지 못하는 폐가 야속하다. 멈추고 싶다. 또 다시 정적.


 적들의 대화 소리가 들린다. 알아들을 수 없다. 카페를 돌아다니는 것 같다.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 온다. 귀를 땅에 대고 있어서 진동이 느껴진다. 진동이 온 몸으로 번져 더욱 떨려온다. 제발. 제발. 멈춰라. 그냥 가라.

 '철-컥' 장전소리.

 차가운 것이 이마에 단다.

 "이 새끼 이거 안 죽었네"

 눈이 저절로 떠진다. 총구가 미간을 향하고 있다.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은데 말이 안나온다. 미련, 후회, 절망... 모든 감정과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그 찰나의 순간, 평소엔 죽어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죽는 것이 몸서리치게 싫은 일이라는 것을 느낀다. 내가 없이 남겨질 시간이 너무 아깝다. 

 ' 피 ---- 슉 '

 머리를 관통한다. 아프지 않지만 얼굴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는 게 느껴진다. 어둡다. 어둠 가운데 생각만이 존재한다. 죽는구나. 나의 생각이 어디론가 전송되어 이어질까? '나'는 어떻게 될까? 천국이든 지옥이든 뭐든 간에 뭐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없겠지? 죽고나면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가겠지? 정말 아무 것도 없을까? 아무 것도 없다는 그 관념조차 없는 그런 세상? 

 생각의 빛이 흐려진다. 어릴 적 집에 있던 텔레비전을 끌 때 처럼, 수평선의 빛이 어둠을 잠시 가르더니 툭하고 꺼진다. 죽음.

 




 ... 눈을 뜬다. 어둠. 파란 커텐 틈 사이로 푸른 빛이 들어온다. 새벽이라는 것을 직감한다. 꿈이었구나. 시간을 본다. 6시 27분. 이것저것 하려면 지금 일어나서 준비해야한다. 지난 밤 내일부턴 일찍 일어나 하루를 좀 더 알차게 보내자고 다짐했는데... 졸리다. 추워서 일어나기가 더욱 싫어진다. 이불을 다시 뒤집어 쓴다. 이내 다시 잠이 든다.







글을 쓴 사람 : 연필로(강신강)/yeonphil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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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Donutist 3번지/연필로2016. 11. 21. 12:42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올라탄다. 한적한 시간이라 자리가 남아있다. 앉는다.


‘위이이이이이이-잉’


 모기다! 날씨가 꽤 쌀쌀해져 사라졌을 줄 알았는데, 추위를 피해 버스에 올라탄 걸까? 아니면 이 버스에서 오래 전부터 살고 있었을까?

왼쪽 귓전을 때리던 소리는 슬그머니 눈앞으로 넘어와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낸다. 목표를 포착하고 손을 뻗는다.


 ‘부---웅’


 허공을 가른다. 모기가 버스 앞 쪽으로 유유히 사라져간다. 사냥감을 잡지 못하고 휘두른 손이 민망해서일까, 방금 전까지 살생을 계획했던 머리는 급하게 노선을 변경한다. 부처다.

한 마리 모기로 살기 위해서 이리저리 날아다니는데, 저 생의 의지로 가득 찬 미물을 내가 무슨 권리로 죽인단 말인가. 불필요한 살육이 넘쳐나는 이 세상이 끔찍하다. 모두가 욕심 부리지 않고 최소한의 살육만 하며, 만족을 느끼며 살아가면 안 되는 것인가. 어쩌자고 모두가...


 '따끔‘ - ’탁!‘


 손등 위로 번진 선명한 핏자국 잡았다. 모기 이 자식.

 “이번 정류장은 혜화역, 동성 중고등학교입니다.”

 도착! 어서 집으로 가서 푹 쉬어야지. 그런데 방금 전까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더라?



글을 쓴 사람 : 연필로/yeonphil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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