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방치된 것들
Donutist 3번지/기억장치2017. 1. 1. 00:00
1.
젖은 종이 위에 글을 써.
써지지도 않는 종이에 어쩌란 말이야? 계속 써봐야 찢어지기만 하고 찝찝한 기분만 남을 텐데. 심지어 지워지지도 않아. 운 좋게 글자가 쓰였다가는 번지기만 한다고.
그래도 젖은 종이 위에 글을 써.
자, 봐. 내가 꼭 이 짓을 해서 보여줘야 믿겠어? 종이가 찢기고 너덜너덜해졌어. 펜은 점점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고. 이걸 보는 사람의 기분도 그리 좋지 않을 거야.
종이는 이미 홀딱 젖어버렸고, 너는 펜을 가지고 있어. 어떤 사람들은 그래도 글을 쓰라고 해. 너는 어쩔 수 없이 젖은 종이 위에 글을 써야만 하지. 그렇기 때문에 나는 너를 돕는 거야. 이 상황에 익숙해지라고.
2.
녹인지, 록인지 자꾸 끼어서 물을 못쓰게 되어버렸다. 물은 흐르는 운명인데도 녹을 걷어가지 못하는 게 영 이상하지. 아니, 오히려 부추긴단다. 이 세계에는 물이 너무 많아 나는 안절부절못하고 손톱만 물어뜯는다. 영원히 안전한 곳이 없다니.
'Donutist 3번지 > 기억장치' 카테고리의 다른 글
퍼렁 빛깔, 기억하는 사람 (1) | 2017.01.09 |
---|---|
아스파라거스 (6) | 2016.12.17 |
빛이 나는 상자 (9) | 2016.11.13 |
한 도넛의 사례 (7) | 2016.11.01 |
옥상에 달이 (6) | 2016.10.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