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어리 - 우리 모두는.
내 삶은 여러 번 무너졌었다. 얕은 물살 마저도 거센 폭풍우가 되어 나를 몰아치기도 했으나 기이하게 정말 세찬 파도에는 조금 아파하기만 할 뿐 무덤덤하게 맞서기도 했었다. 날 돌아보면 허하니 무언가를 이뤄놓은게 없는 것 같다. 불안하기 그지없어. 그래도, 그걸 마주하기로 하였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단발성 회피는 그만두고, 세상 밖으로 나와 마음껏 다치고 부딪히며 나의 모양을 조각해나가자. 그 조각들은 쉴새없이 다듬어주지 않으면 금새 녹이 슬고, 빛을 잃어 마치 부패한 물고기같은 형체를 띈다. 비린내와 함께 공간을 칙칙하게 가득 메우는 곰팡이빛, 발악. 침묵의 발악. 원망같은.
그 무더져가는, 조각이어야 할, 짙은 점성의 덩어리를 더 이상은 잠자코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걸어나와야 했다.
걸어나오자 이전의 때가 벗겨지며, 좀 전의 진-한 탁함과는 거리가 생긴다. 그러나, 여전히, 당연히, 계속해서 '조각질'을 하고 있었던 다른 '덩어리'들에 비해선 꾀죄죄하고 투박하기 그지없다. 나와 눈이 마주친 다른 덩어리들은 재빨리 눈을 피한다 - 형용할 수 없는 그간의 '탁한 고독'에 기인한 것인지. 당연한 것이다. 나의 작은 골방에서 나온 지 불과 몇 분만에 모든 흠들이 다 사라지고 빛나길 바랬다면 그건 크나큰 오산이다.
우선, 나의 조각을 어떻게 빚어낼 지 구상하기 위해선 나의 때-들을 벗겨내며, 나의 고유한 형체와 색감을 알아내야겠다. 그리곤, 내 모습과 함께 이 모습에서 내가 빚어나가고 싶은 상은 어떤 것인지 머릿속으로 생생하게 그릴거야. 적절한 각도와 알맞은 세기의 조각칼-풍파들을 찾아나선다. 깎여나가고, 덧대여지는 것. 그는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를 찾아내는 건 오롯이 나의 몫이며 적재적소에 그곳을 찾아가야만이 나의 최종의 그것-선망의 대상-과 가까워질 수 있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다보면, 주로 그저 어디서건 불어오는 바람에 무차별적으로 몸을 내어줄 뿐이다. 그러다보면, 주로 무던한 다각형의 꼴이 나오게 된다.
그래, 변화는 늦게 깨달은 자에게도 자신의 아량을 인심껏 베풀어준다. 그러나 이미 너무 많이 깎여나가버리고 나면,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깎여나갈만한 더 이상의 덩어리들이 몸에 남아있지 않아 선택의 폭을 줄여야만 하게 된다. 싫어. 그래서 가급적이면, 손발을 움직이지 않으며 그대로, 내게는 분명 불쾌한 바람임 - 남들의 떠밈-혹은 눈치에 기인한, 혹은 그저 계절풍-식의 바람인 - 에도 수동적으로 날 내맡기는 건 지양한다. 매일같이 깎여나가는 나의 형체를 보며 미소를 지을 수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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