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UT


같은 구름 아래 있는 것만으로도 벅찬 때가 있었는데, 그런 솜사탕 같은 날들은 다 날아가 버리고 손바닥엔 기분 나쁜 끈적함만이 증거를 남긴다.

'왜 하필.'

대부분의 바람들이 그러하듯 이번에도 신은 나의 편이 아니고, 둘 사이엔 숨 막힐듯한 침묵만이 고요하다. 거기엔 익숙한 이가 서 있었다. A였다. 만나면 어떤 말을 해야지 하고 수백 번도 생각했건만 나오는 건 겨우겨우 소리 없는 숨소리다. 앳된 얼굴의 A는 여전했다. 다만 못 보던 코트를 걸치고 있어서일까. 익숙한 얼굴이 어쩐지 같으면서 또 다르게 보였다. 그를 처음 만난 날인 양 설레였고, 동시에 찌르르하고 아팠다.

"머리잘랐네"

"......별론가"

A의 새로 자른 머리는 썩 잘 어울렸다. 손을 쭉하니 뻗으면 햇살처럼 간지러운 그것이 손 틈새로 헤엄쳐 나갈 것만 같았다. 저 작은 머리통을 품에 안는다면. 쏙 안고서 부드러운 머리칼을 빗길 수 있다면. 두둥실한 상상, 아니 사실은 이미 아는 예전의 감촉이 날아다녔다.

 

종종, A를 헤매었다.

자주 가던 카페라던가 좋아하던 술집 혹은 피시방에도 발걸음이 닿았으나 예전과 다르게 우연 같은 건 없었다. 가끔은 기억력이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좋아져서 언젠가 그가 한번 말했던 책을 뒤지기도 했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혹시 그걸 알게 된다면 뭔가 되돌릴 순 없을까 하고. 물론 남는 건 이제 우연은 없을 일이라는 깨달음과 도무지 알 수 없는 인간이라는, 동시에 이런 이의 무엇에 반했던가 하는 미스터리였다.

 

그토록 바랬던 우연은 참 늦게도 나타나 허를 찔렀다.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안부를 물었고 예상대로의 대답만이 이어졌다. 그렇게 짧은 인사 후에 우린 지나쳤다. '뒤돌아보지 말아야지' 라는 건 역시 힘없는 생각이었다. 고개를 돌렸고 그이의 뒷모습이 흐릿했다. 이상하게도 얼굴이 아닌 뒤통수를 보자 엉망인 실타래가 ''하고 풀리는듯했다. 사실 그때에도, 그 예전에도 그러했다. 언젠가부터 뒤를 쫓는 나의 눈길은 결국 아무것도 따라잡지 못했고, 뒤처져서 천천히 걸을 따름이었다. 이따금씩 심통이 나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우린 다른 세계에서 각자의 것을 보고 있었는걸. 하긴, 우리가 '우리'라고 불릴 때가 존재하긴 했었던가. 점점 달아나는 그 달 한 조각은 애초부터 같은 곳을 걸었던 게 아니라는 것만 같아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모든 걸 부정당한 기분이 적잖이 쓰라렸다. 허공에선 '-' 하는 경적소리만 맴돌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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