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UT




"나름 오랜 시간 시를 썼다고 겸손을 잃은 건 아닐까. 그때가 모두 기억나진 않지만, 한 문장 한 문장 떠오를 때마다 작은 노트에 적어두었던, 습작은 매일 한 편씩 적어야 한다며 시 노트를 폈던, '시란 무엇일까' 문제의식을 가지고 스스로 답을 찾아나갔던 때가 그립다. 어릴 적 썼던 시와 같던 예쁜 시를 더는 쓸 수 없어서가 아니라 그때처럼 누군가를 소중히 생각하고, 고뇌하고, 고독을 차분히 감내하던 나를 잃은 것 같아 슬픈 오늘.."


1.

힘들 때 하필 
시가 내 옆에 있었다.

시를 쓴다는 건 무엇일까

유명한 백일장에서 수상하거나
시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것이
그 이유는 아니었다.

도구일 뿐이었던 시

나를 표현하고,
누군가를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해주는,

고독을 배웠고,
웃는 법을 배웠고,
자유를 배웠고,
행복을 배웠다.

2.

그 시절 써 놓은 시작노트를
펴볼까, 그 기록을 읽으면
마치 그때로 돌아가
가슴 아플 것 같아,

두 번 읽기가 매번 두려웠다.

그 사람이 준 편지는 애증이
잠가 둔 보물상자

그 안에 내 2년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는데,
열지 못한다면

그 아이는 잊힐까, 영원히
위로받지 못한 채.

2015. 8. 8

설향을 위한 시 / 윤이명(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