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우리는 모두 우리의 방에서 잠들 수밖에 없는지, 그 간단한 경계선을 찾지 못해 혼란스러워 해야 했는지. 가끔은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있는 고민의 진열장 같은 곳에서 내게 가장 어울리는 고민을 꺼내 살펴보곤 했다. 내가 고른 고민은 저마다의 특별한 해로움으로 나를 반겨주었고 나는 이따금 그들의 노련하면서도 배려 있는 불친절함에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나는 매일 아침 나를 벗고 나를 입었고, 밤늦게 집에 돌아와서는 나를 벗고 나를 입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와 정확히 똑같은 자세로 잠에 들었다. 하루는 프랙탈의 끄트머리처럼 가장자리에서 나의 일생을 모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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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습게도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옆에 서있던 사람이 가벼운 기침으로 내게 주의를 주었을 때 나는 어째서 그런 행동을 하느냐고 반문하고 싶었다. 어째서 왜 그런 기침을 내게 하느냐고. 그러나 그의 기침은 차가운 공기에 그의 몸이 반응하는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에 지나지 않았고 그에 대한 나의 반응은 지나칠 정도로 과민한 반응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입을 다문 채 불이 꺼진 이동통신회사 대리점 창문에 나를 한참을 비추어보다 왜 밤에는 모두가 집으로 돌아가는지 그리고 끝내는 아무것도 아닌 어떤 자세가 되어 하루를 마치고야 마는지를 생각했다.
내게는 그럴 만한 여유가 있었다. 질 나쁜 여유가. 내가 경멸하는 사람을 닮아가는 것이 삶이라고 누군가가 말했고 나는 그의 말을 수없이 동의할 수 있었다. ‘누군가’라는 존재들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모두 뱉어낸 채 이곳을 떠났다. 정류장에 남은 사람들은 나와 고든, 그리고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형편없는 친구들 몇 명이었다. 나는 낯익은 멜로디를 기억해내 보려 애를 썼지만 그러기에는 아까도 말했듯이 밤이 지독하게도 깊었다. 이런 밤에는 어떤 노래도 흥얼거릴 수가 없었다. 그러니 누군가는 모두를 위해 라디오를 틀어주어야 했다.
라디오가 주파수를 기다리는 동안에, 그 시간은 매우 짧아서 마치 순간처럼 여겨지지만 아무튼, 그 시간 동안에 나는 무엇인가 대단하고 중요한 사실을 깨닫고는 고든의 어깨를 잡고 ‘아’라고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고든은 여전히 무료하고 따분한 표정으로 남은 막차를 계산하고 있었고, 나는 라디오에서 셋잇단음표로 시작하는 오래 전에 들은 적이 있던 피아노곡이 시작되는 순간 무엇을 깨달았는지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러고는 노래가 흘러나오는 동안 내내, 무엇인가를 느꼈고, 그것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이었다는 생각을 리듬에 맞추어 되풀이했다.
이 정도면 많은 것이 해결되었다고 느낄 법도 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멀리서 경찰관이 부는 호루라기 소리가 밤을 날카롭게 찔렀고 우린 정신을 차리고 겉옷을 매만졌다. 이제는 헤어져야 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