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UT

도넛한 기분


 

 내가 도넛에 집착하게 된 것은 어느 날 아침 문득 지구가 아주 빠른 속도로 회전하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껴버렸고, 그 회전의 중심은 텅 비어있다는 것을 직감하기 되었기 때문이다. 그날 아침은 다른 아침과 유난히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아침이었고 나는 마침내 20대의 반을 접어가고 있었다. 앞으로도 이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나날 속에서 나는 이런 로 매일 아침을 맞이해야 하는 일에 익숙해지기를 강요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건 조금 진지한 고민이었고 어설픈 질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디를 중심으로 돌고 있는 것일까.

 

 태양계의 여덟 개 행성은 모두 같은 방향으로 공전하고 있고 그 여덟 개의 행성 중 하나인 지구도 그 거대한 회전에 동참하고 있다. 그렇게 보자면 어느 날 아침 나의 내부를 뒤흔들어버린 회전의 정체는 실로 우주적인 셈이다. 그렇기에 적어도 이 은하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회전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은하계도 돌고 있으니까-좋든 싫든 이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이 속도를, 이 소용돌이를.

 나는 나의 소용돌이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어쩌면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른다. 확실한 것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어떤 일을 하면서도 다른 일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언제나 바깥을 보고 있다. 안에서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다. 내가 건넛방을 기웃거리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놀이터를 떠난 아이들을 찾는 술래처럼 나는 이 자리에서 돌아오지 않는 어떤 것을 찾기 위해 한참을 어슬렁거릴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매일 아침 고지서처럼 날아오면, 나는 숨을 들어 마셨다 내쉰다. 테트는 모든 것들이 빠르게만 사라질 것 같다는 기분이 들면 네가 들이마신 숨이 언제 따뜻해지는지를 느껴보라고 했다. 그게 느껴지면 너는 여기 이 세상에 아직 있다는 뜻이니 안심해도 좋다고.

 

 지하철엔 사람이 많았고 나는 나의 소용돌이를 조심스럽게 꺼내보았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소용돌이를 지니고 흔들리고 있었다. 누군가 말했듯 우리는 거대한 팽이일지도 모른다. 서있기 위해서 돌아야만 하는, 돌지 않으면 쓰러지고 마는. A4 용지처럼 정확하고 친절한 규격으로 재단된 하루가 내게 주어지고 나는 이 일정한 아침과 밤의 간격에 대한 원심력과 같은 애정을 느낀다. 어쩌면 중심이 중요한 게 아니라 중심을 향하고 있는 마음, 자세가 전부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좀 더 균형을 잡고 싶다. 아직은 더 갈 수 있어야만 한다. 내려야할 역을 알리는 방송이 나왔고 나는 열리는 문 사이를 걸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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