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요즘 적적한 나머지 물을 기르고 있다.
2.
어째서 물을 기르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간단하다. 먹이를 줄 필요도 없고, 관리를 해줄 필요도 없다. 심지어 죽지도 않는다. 이끼라도 끼면 싱크대에 버리고 새 물을 받아주면 된다. 세상에. 무정한 인간이 키우기 이토록 알맞은 애완물이 있을까. 물의 이름은 당연히 물이다. MoOL(a Master of Ordinary Loneliness 일상적인 외로움의 전문가쯤 되려나) 어쨌거나 나는 가끔 이 물을 쳐다보면서 말하곤 한다. 안녕, 안녕.
3.
정신이 나간 건 아니다. 나는 진실로 이 물이 내가 건네는 인사에 자신의 방식으로 확실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믿는다. 다만 녀석은 우리가 바라는 방식으로 확실하게 반응하지 못할 뿐이다. 사람들은 종종 그걸 이해하지 못하고, 저 녀석 나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군. 혹은 저 녀석 완전히 얼간이 아냐. 내 말은 듣긴 한 거야라고 쉽게 그 대상으로부터 대답을 듣기를 단념한다.
그러나 기다려보면, 내 경험에 의하면 한 시간 이상, 물과 마주 앉아 서로의 안부를 묻고 진심으로 말을 거는 시도를 포기하지 않으면, 물은 응답한다. 그래, 안녕, 안녕.
4.
물은 장점이 많은 친구이다. 불평하지 않고, 남을 해치지 않는다. 무엇보다 한없이 투명하다. 자신의 몸속으로 떨어진 이물질들을 여과 없이 내게 보여준다. 물의 고요 속으로 들어간 어느 강바닥에서 주워온 조약돌, 레고 블럭(이런 걸 왜 물병에 집어넣고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나는 MoOL의 명령을 따를 뿐이다.)따위는 바깥에 있을 때보다 더 깨끗하게 보인다. 마치 이제는 누구의 손도 닿을 수 없는 공간을 확보했고, 그 공간 속에서 자신의 존재가 무엇임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는 듯이 더 맑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그럴 수 있을까. 나도 마더 네이처, MoOL의 품속으로 들어가면 더 맑은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일까. 정말 그럴 수만 있다면 나는 평생을 MoOL의 품속에 있을 자신이 있는데.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헤엄을 치지 못하는 뿐더러 물의 그 불쾌한 촉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자연을 벗 삼아 물속을 유영하는 자유는 나와 거리가 먼 것이다. 결국 나는 탁자 위에 주먹 한 움큼만큼의 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안녕, 안녕
5.
요즘 적적한 가운데 물은 내게 큰 위로를 주고 있다. 비록 바깥에 있는 나에게 메신저로 안부를 묻는 명민한 행동까지는 기대할 수 없다 하더라도, 녀석은 꽤 괜찮은 친구이다.
ps. MoOL을 기르는 방법은 매우 간단합니다. 다 드신 동그란 생강원액 유리병에다가 아리수를 꽉 채운 후 뚜껑을 닫습니다. 이때 잘 닫지 않으면 싱크대에서 탁자로 옮겨갈 때 MoOL을 흘릴 수가 있으니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ps2. 나중에 MoOL을 브랜드화 해서 파는 건 어떨까. 애완물 기르기. 다양하고 에쁜 병에 담긴 당신만의 고요. 물. 목이 마르다고 마시지 마세요.
ps3. 저는 언제나 괜찮습니다. 어쩌면 언제나 괜찮아서 문제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즐겁네요. 제 글을 읽은 친구가 네 글을 읽으면 어딘가 맥이 빠져버려서 뭐라 말하려다가도 그만두게 된다고 하네요. 읽는 사람이 그 정도인데, 쓰는 사람은 오죽하겠습니까. 저는 거의 뚜껑을 연지 3년이 지난 콜라병 같은 사람이죠. 그렇다고 읽는 사람까지 그러길 바란 건 아니지만 여하간 그것도 나쁘진 않네요. 모두 맥 빠진 채로 잠듭시디다댜댜
안녕히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