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의 짤막한 서신
행운의 편지, 나흘 안에 당신 곁을 떠나야 합니다. 혹 미신이라 하실지 모르지만 사실입니다.
―불쌍한 당신,
당신은 나를 보고 소리를 질렀지요. 뭉크는 활로 목젖을 여덟 번 긁어 괴성을 뱉었어요. 공포인가요, 경의인가요. 나는 기계로 반죽한 회색 물감과 린시드 용제 그리고 바니스를 덧발라 탄생한 명작인데요, 아스팔트에 유채, 2016년 작입니다.
내 하품 소리는 옥타브가 달라요. 불행하게도 당신은 구태여 듣고야 말았네요. 허공에 누워 아침잠을 꼬박 두 번 자는 병은 꽤나 전염성이 강합니다. 아스팔트 위에 터진 내장을 전시할 운명을 대부분의 보행자는 알고 있지요. 내닫는 바퀴에 끼어 물렁한 살덩이를 사방으로 페인팅하는 행위 예술가. 장래희망이 아닌 팔자소관이지요.
과잉된 것은 구멍을 통해 흐르는 법입니다. 억지웃음과 보조개, 야욕과 뚝뚝 흐르는 정액, 과대망상과 목구멍의 허언, 불필요한 동정과 맛없는 콧물 같은 것들 말입니다. 아,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요, 한강 물의 온도를 재보았다면서요. 당신 몸의 구멍을 바라보세요. 흘러내리는 것을 팔아 밥도 먹고 잠도 자고 섹스도 할 수 있어요. 구멍은 생명이에요. 치즈에 구멍을 내는 것은 요령껏 게으른 생쥐의 앞니랍니다.
나의 항문에선 암 덩이 같은 권태가 장맛비처럼 쏟아져 내려요. 목숨의 부분 집합이요 생명의 은사지요. 듬성듬성한 머리를 보호할 필요는 없습니다. 날개는 영업을 철수했거든요. 당신이 불안에 떠는 이유를 알아요. 나에게서 당신 죽을 날짜를 받아갔잖아요. 미리 점을 치는 것은 반칙이에요. 나를 지하철 보관함에 넣어주세요. 나는 당신의 미래니까요.
―비둘기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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