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2 cf) 데미안 - 방황과 불안
‘저 그린티 라떼 한 잔이랑이요, 어, … 잠시 … 브라우니? 이거 브라우니 맞죠?’
‘네-‘
‘아 네 이거 하나요.’
‘8,500원이요’
‘허, 아, 음, 네 여기요’
‘현금 영수증 하시겠어요?’
‘네, 네 010 8508 27….’
‘번호는 여기 밑에 기계에 입력해주시면 되요.’
…
탁-탁- …
반복되는 공황과 우울증의 전조증상과 – 며칠 간의 웅크림, 간신한 회복 이후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버거운 업무들의 몰아침, 무언가를 부여잡고 싶은 마음에 연락했던 ‘소중한’ 친구들과의 만남 이후면 더 공허해지는 일상 끝에 혼자 있고 싶어서 온 공간이었다. 새로운 나를 찾고 싶은 마음에, 새로운 공간을 택했고, 분명히 나는 한 시간에 불과하긴 했지만, 공간들 사이의 ‘단절’을 상징하는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거쳐 이 곳으로 날아왔다. 하지만, 난 그대로였다. 주문하는 것조차 떨려 과하게 목소리를 키우고, 표정은 굳어서 사라져 버린 지 오래인 듯했다 – 불과 5분 남짓이었지만, 마치 오래 전에 사라진 듯한 근육의 경직. 다시 약한 공황이 찾아왔다. 계단을 올라가다가 접질렀다. 마음을 달래려고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어떤 사람이 거울을 보며 통화 중이다. 갑자기 눈이 마주쳐서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화장실 문을 열고는 놀라서 살짝 뒷걸음질을 쳤던 게 닫히는 문과 부딪힐 뻔해서 굉장히 기이한 탭댄스를 추듯이 하고는 애써 서둘러 화장실 칸으로 들어갔다. 숨을 고른다. 아,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눈을 감는다. 작은 고시원 방 한 켠, 옆 방 좌절된 꿈의 포효는 새벽 4시경마다 들려오는 대리콜 요청에 따른 과한 ‘예- 예-‘와 함께 이어지는 중저음의 욕설로써 나지막히 들려온다.
‘씨-발, 내가 한 때는 잘 나가는 당구 선수 지망생이었단 말이야, 아주 감독님들이 눈여겨보는, 와, 씨 어쩌다 이렇게 됬냐 내가, 야 됬고 나 이번에 200만원만 빌려주라. 아 진짜, 너무 급해서 그래 형. 아 진짜 미안하다. … 아니, 아니, 괜찮지 형. 애초에 이런 질문을 하는 거 자체가 미안했지. 아냐, 술이나 먹자. 그래. 응 들어가. … ’
분명 우리 사이에는 형식적이나마 한 뼘쯤 되는 장막이 쳐져 있는데, 그의 목소리는 잠 못 드는 – 그 때문에 들지 못하는 것도 있었지만 – 밤이면 더욱이 선명하게 나의 귓바퀴를 울리곤 했다. 가시지 않는 편두통에 때론 나의 ‘단잠’을 향한 일말의 기회조차 박탈해버리는 듯한 옆 방의 그가 증오하리만큼 밉기도 했다가, 아직까지는 젊음과 성공을 향한 이상을 막연하게나마 붙잡고 있던 20대 초 중반의 나에게 그 다음 단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아 안쓰럽고 두렵기도 했다가, 오늘도 그가 낮고 두꺼운 욕을 내뱉으며 한 줌의 친구들에게 인생한탄과 함께 조심스레 몇-백의 돈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하고, 애써 쿨-한 척을 할 때면 모종의 동정심이 들기도 하였다. 이렇게 나는 종종 마주칠 뻔한 상황이면 당황한 채 걸음걸이가 빨라졌기에 뒤통수만 간신히 교류했던 사이의 낯선 자와 분노와 관심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상태가 좋을 때’, 무수하게 맺어왔던 표면적인 관계들 – 나의 사회 – 가 구축해 놓았던 ‘웃음이 빛나는, 주위를 밝혀주는’ 외형을 유지할 기력이 없을 때면 두려움과 불안감에 압도되어 작은 고시원 방에서 움츠리고 떨던, 분리된 자아의 나는 옆 방의 투박하고 솔직한 ‘실패한 것’의 모습이 자신에게 위안이 됨을 느꼈다. 하지만, 옆 방의 이방인을 결코 ‘친구’로 느낀 것은 절대 아니었다. 자신을 모종의 관찰자이자 우월한 자로써, 옆 방의 그를 ‘관찰 당하는 그 무엇-누구’임과 동시에 열등한-실패의 결집체로서. 애써 나도 모른 채 외면하고 싶어했지만, 그렇게 난 또 하나의 관계를 맺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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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에 대한 응시로부터 시작되는 성찰의 모먼트. 얼음이 녹아 탁해진 그린티라떼의 잔해를 응시하다가, 요 근래의 며칠이 쭉 스쳐 지나간다. 3일 동안 나의 아침은 두통과 함께 시작되었다. 오늘도 일어났다는, 하루가 시작되었다는 버거움. 괴로웠다. 내 이상과 괴리되는 현실의 소식과 내가 접목되었을 때 느껴진 생소한 이질감과 그로 인한 주기적인 공황과 불안은 72시간 동안의 내 시간을 야금야금 갉아먹었다. 왜, 하필, 내 옆의 그 사람은 - 이러했을까, 왜 난 그런 사람을 선택하여 내 옆에 두고 있었을까, 왜 난 그와 모종의 관계를 형성하여 그를 자주 봐야만 하는 상황에 스스로를 밀어넣었던 것일까.
그러다보면 한참 동안 기나긴 한숨을 내쉬다가 이내 자리에 누워버리는 것 말고는 관성처럼 다른 선택지는 고려되지도 못하였고, 그렇게 - 전조증상에 불과했던 나의 '검은 개'에게 목덜미를 내어준 채 며칠을 꿈뻑 울며 지새우기 마련이었다. 물론, 소리내어 울진 않았다. 그냥 마음속으로, 약간의 문드러짐과 함께, 무덤덤하게 굳어갔고, 그럴 수록 이 세상 속에서 나의 흔적이 사라져간단 사실에 더 침울해했다. 그러다가도 이따금 ...
띡-띡-띡-띡 - 슈르륵 -
나락의 사색을 방해하며 도어락이 열린다.
'야, 뭐하는 거야! 설마 오늘 안 나갔냐?'
분주히 이불을 추스른다. 잠에 들었다가 깬 척을 하며 괘씸한 표정을 지으려다가 그의 궤뚫는 눈초리에 부끄러워지며 이내 그만둔다.
'뭔 소리야..'
도대체 누가 나의 터무니 없는 현학적 성찰을 판단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생산성이라곤 일체 찾아볼 수 없는 도돌이표같은 생각의 굴레 속에 휘감긴 나에게, 이 사람은 고작 '그건 중요한 게 아냐', 혹은 '이제 좀 그만해라'란 무미건조한 조언만을 던져줄 수 있는 존재이다. 이럴 땐, 한 때는 나누고자 희망했던 아픔의 짓누름이 배가 되어 날 압박할 수 밖에 없음을 깨달으며 더 탁해져간다.
할 말이 없다. 그냥, 고스란히 이 곳을 비워버리는, 새하얀 침묵을 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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