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utist 3번지/정축적

6시간 28분 33초

알 수 없는 사용자 2018. 4. 27. 03:02

달빛이 벽면에 추상을 아로새겼다. 연한 빛으로 덧칠된 그것은 차가웠다. 차가운 추상이다. 밤의 고요를 캔버스 삼아 시간은 붓질을 해 대었다. 창틀 너머로 발산된 도시의 불빛이 넘실대었다. 그들은 내 방, 기숙사 벽에서 아주 정적으로, 그러나 변화하고 있었다. 나는 매 시간마다 경외에 젖어 들어갔다. 그 형상은 매 초마다 스스로를 태우면서 스스로를 빚어내었다. 나는 한 없이 숨 쉬는 법을 잊어버릴 즈음에야, 그래도 살고자 하는 이 몸뚱이의 발악에 짧게 노폐물을 내 쉬었다. 날숨이 벽면에 섞여 들어가 달빛으로 반짝였다. 여전히 그것은 대단히 정적으로 끊임없이 변화하였다. 흐릿함 속 심원의 빛이 내 동공을 찢고는 심장에 내리박혔다. 경외 속에서 무심코 돌린 시야 앞에 수십 개의 격자 너머로 쪼개진 우주의 눈동자와 마주했다. 그 시선은 나를 한 없이 작아지게 했다. 나를 향해 쏟아지는 수만 갈래의 은빛 섬광이 내 인두겁을 태워버릴 것 같았다. 이 신성한 침묵 속에서도 감히 약동하는 나의 맥박이 원망스러웠다. 조용히 나 또한 이 풍경의 일부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바람구멍이 열렸다 닫히고, 핏줄기가 출렁이며 내는 소리에 나는 결코 정적일 수 없었다. 매 순간 나는 동적으로 끊임없이 타성에 젖어 들어갔다. 나는 결코 벽 속의 마스터 피스가 될 수 없었다. 나는 이 인두겁 바깥으로 뚫고 나와 질주할 수조차 없었다. 그저 여기 평범한 침대 위에서 누웠다 가끔은 엎드리며 벽면을 응시할 뿐이었다. 나는 고작 맥동일 뿐이었다. 매 시간 움직이면서 게걸스럽게 수명을 빨아먹으며. 저 정수리 위로 보이는 찬란한 구체는 지구를 억겁동안 휘감고 있을 텐데, 나는 짧게 콩닥거리다 스러질 유기체덩어리였다. 경외감과 허탈함을 동시에 내 쉴 때에도 여전히 나는 시끄럽게 쿵덕거릴 수밖에 없었다. 절대자가 감아놓은 시계태엽이 콩닥, 쿵덕, 콩닥거리며 풀리고 있었다. 이 잔인한 시한폭탄이 너무나도 나를 메스껍게 만들었다. 여전히 눈동자는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벽면에서 타오르는 달빛 이상은 내 망막 가득하게 맺혀 있었다. 쓰라리도록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내 눈동자에서 새어나온 필멸성이 힘없이 떨어져나갔다. 넓은 침대 시트 위 손톱보다도 작은 얼룩이 생겼다가 거의 말라갔다. 내 존재의 의미 자체도 함께 사그라드는 듯 했다. 나는 끊임없이 저 빛에 닿고 싶어 했다. 언제나 그곳에 있었던 눈동자. 끊임없이 난 팔을 뻗고 헤엄치려 했다. 하지만 이 우주라는 바다의 가장자리조차 벗어나지도 못했다. 또 의미 없는 발악이었다. 헛된 망상으로 30초가량을 허비했다. 31. 32. 33... 그럼에도 저 눈동자는 변함없이 날 내려다 볼 뿐이었다. 나는 심지어 반대편 벽면까지도 닿을 수 없었다. 감히 순간이면 사라져버릴 몸뚱이가, 어찌, 그 이상 절대적일 수 없는 형상을 탐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조용히 나는 가라앉을 뿐이었다.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심해 빛깔로 물들어 있었다. 나는 뻐끔일 뿐이었다. 노폐물이 방울을 타고 흘러나왔다. 보글. 보글. 보글...

 

 

 

이 모든 순간에 나 또한 고정되고 싶다. 모든 호흡과 맥박을 멈추고. 영원히 정적으로, 영원히 날아오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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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랜만에 글을 다시 올리네요... 이전처럼 도넛이 다시 활성화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들 도넛한 나날들 보내시길 바랍니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