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오류 2018. 1. 25. 15:12

작은 솔잎과 우유 거품이 늘러붙은 빨간 머그컵 안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숟가락. 그리고 그 안에 비춘 나의 뒤집히고 늘여진 얼굴을 보며, 나는 문득 나의 삶을 기록하고 싶다고 생각하였다. 매일같이 속도를 더하는 하루의 반복 속에서 무언가의 의미를 창출해내지 않으면 이제는 숫자의 누적이 결코 더한 뿌듯함과 보람을 낳지는 않는단 걸 느껴가던 이십대 초중반의 나는 흥미진진한 감정과 사건들을 다시금 열망했다.
꿈은 찾은 듯 아닌 듯 어리숙하게 포장하여 나 자신과 남에게는 얼추 그려낼 수 있을 때 쯤이면 이제 더 이상 삶의 요동치는 불안함과는 이별할 수 있을 줄 알았던 터였으나, 방충망을 훠이 가로지르는 차디찬 바람처럼 내 마음은 여느 때보다 텅텅 비어있었다. 그는 모든 차디찬 바람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점점 그 구멍의 크기를 키워나가는 듯 하였다 - 더 이상 아무것도 여과할 수 없을만큼: 나의 '본체'가 무엇인지 모를만큼 그저 오가는 바람과 이물질들에 따라 나 자신이 총체적으로 바뀌어버리는 경험.
뿌리가 곧게 박힌 나무기둥에서 햇빛을 향해 뻗어나가는 제한적인 나뭇잎과 가지의 움직임보다도 무력하고 부자유스러운 느낌에 압도되었던 바로 지금까지의 이 시간들을 거쳐, 이 빨간 머그잔 위의 나의 투영물을 지그시 응시하던 나 자신은, 문득 글을 써야만 하겠다는 열망에 사로잡혔다.
글이 써졌다가 여백에 공허한 자국만을 남기는 걸 활자마다 반복하는 뻑뻑한 만년필을 뒤로하고, 집어든 노트북 화면위에 누적되는 픽셀들은 나의 방충망을 다시금 장식해주는 기분이었다. 살을 더해줬다. 나는 누구인가, 굳게 닫힌 창문에 한번 더 암막의 커튼을 내려 모두를 차단하였다가 신물난 어둠에 굴복하고 구멍이 없다시피 한 방충망으로 세상에 덩그러니 놓여 마지막 남았던 심지가 떨어진 양초의 꺼지는 불-연기처럼 바람에 흩날려가는 극단의 그것이었다. 고정적인 실체-자아의 부재는 과연 나를 '실존'하는 인물로 볼 수 있게 허할까? 예측불가성, 충동성과 극단의 합으로 이루어진 연기이자 암막같은 '그대-나'는 과연 한 명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모든 고민들이 '씀'이라는 행위와 함께 글자 속에 응축되어 단단한 본토를 이루어주고 있다. 이러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는데. 마치 내가 지구의 창조자가 되어 뛰어놀 '표면'을 빚어내기 이전에 단단하고도 흐르는 맨틀과 핵을 만들어 그 원형의 중심을 잡아주는 것처럼. 그렇다. 충동성과 극단이 빚어낸 또 하나의 행위에서 끝날 수 있었던 '글쓰기'는 혼란의 향연이었던 널뛰기 속에서 중도의 문을 창출해준다.
세찬 바람에 창 밖의 야자수잎은 마치 사자갈귀처럼 포효한다. 나뭇잎은 그 포효에 힘입어 그림자 속에서 마귀의 길고 뾰족한 손가락처럼 어떠한 음모를 꾸미는 듯 조잡하게 움직인다. 사냥감을 노리는 거미의 다리처럼 분주하게 움직이다가 바람의 멎음과 함께 - 사냥감을 '발견한' 거미처럼 잠시 침묵한다. 그러다가 햇빛이 내려앉고 잎들이 연둣빛으로 태세를 바꾸면 전혀 다른 무언가가 되기도 한다. 청량한 코코넛의 쥬스와 주욱 내리깔린 야자수의 열 앞으로 비추는 사람들의 재잘거림, 웃음, 고함, 써핑하는 젊은이와 튜브 탄 아기, 접영으로 바닷가의 진입 가능 경계선을 휘젓는 중년과 노년의 사이에 놓인 어떤 어른.
이 줄을 끝냈을 때 갑자기 파란 빛의 하늘이 회색 구름들 틈새로 비춰졌다 - 가 사라졌다.
난 유난히 그런 게 좋다. 벽 천장에 고스란히 보이는 파이프와 깨어진 암반, 응어리진 시멘트 덩어리, 마무리 덜 된 페인트 자국, 삐져나온 못. 이런 게 나한텐 예술적으로 보인다.

오묘한 표정으로 글을 쓰고 있는 D. 자연스럽게 어깨가 움츠러들었다가는 소스라치며 어깨를 펴는 행위가 일정한 주기로 반복된다. 핸드폰으로 자신의 음료를 찍는데 심취한 C. 무릎 위에 책을 둔 채로 왼쪽 고개를 불편하게 내뻗고 잠에 든 B. 그의 콧바람 소리는 이 공간 전체를 메운다.
리고 벽 한켠에 서서 왼쪽 모서리를 가득 메운 책장을 응시하는 A. 딱히 그의 눈에 들어오는 책은 없다. 오늘따라 유난히 책 한 권 보단 다양한 색과 높이의 책들의 조합이 마치 이 카페의 배경음으로 연주되고 있는 재즈처럼 불규칙적이고 장난스러운 리듬 장단처럼 느껴져 눈을 사로잡는다. 한 시간 남짓의 비행으로 모국어를 쓰는, 야자수의 공간에 올 수 있음에 문득 뭉클함을 느낀다. 그의 거주지인 수도에선 느껴볼 수 없었던 검은 돌과 파란 물,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초록 빛의 날렵-길쭉한 야자수잎. 회색빛 시야가 익숙했던 그에게 쏟아지는 원색들이 버겁다가도 이내 그가 이뤄내는 압도적인 조화에 귀가하는 편도 티켓을 취소하고 싶어진다. 주황색 등대를 곧게 세운 방파제 위로 내려박히는 파도는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다. 아니다. 점차 더 욕심이 나기 시작한다. 같은 언어, 같은 간판과 사람들, 약간 다른 말씨를 제외하고는 여전히 탁한 사람들의 눈빛. 수도의 긴박함에 적응한 상태였기에 아무것도 보지 못했지만, 점차 그 처참한 조급함의 안경을 내려놓고 나면, 분명 이 곳에서도 무언가에 쫓기고 있는 사람들의 허우적임을 느낄 수 있다.
그는 떠나고 싶다. 더 먼 곳으로. 그 곳에서도 궁극적으로는 이와 같은 느낌을 어디선가 주울 수 밖에 없을 것임을 알면서도, 그는 기어코 떠나고 싶다는 마음을 계속해서 덧칠하고 있다.
아직 그는 벽 한켠에 서있다. 책장을 응시한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