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utist 3번지/연필로

바람이 불어서 그랬어

연필로 2017. 4. 10. 12:30


 

 바람이 불어서 그랬어

 



 올해의 첫 봄비가 내리던 날, 하늘을 뒤덮은 먼지가 조금은 없어지길 바라며 길을 걷고 있었어. 집 앞 골목에 접어들었을 때 맞은편에서 두 아이가 걸어오고 있는게 보이더라구. 여자아이가 조금 더 가벼운 발걸음으로 앞장 서 걸었고 그 뒤를 남자아이가 뒤따르고 있었지. 열 살이 채 되지 않아보였어. 둘은 서로 다른 우산을 쓰고 있었는데 남자아이가 우산으로 여자아이 우산을 툭툭 건드리더라구. 그때마다 우산에선 물방울들이 튀어 올랐지. 여자아이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남자아이가 조금 더 세게 치더라.
 
 저 나이 때 남자아이들은 다들 개구쟁이구나- 라고 생각했어. 나도 으레 우산이든 실내화가방이든 손에 뭐만 들려있으면 장난을 치곤 했으니까.

 잠시 26살의 나에게서 멀어져 어린시절 추억 속으로 들어갔을 때, 그 두 아이는 어느 새 말소리가 들릴 정도로 나와 가까워졌어. 마치 그 두 아이가 나의 기억 속에서 나온 것 같았지.

 여자아이가 말했어. 
"야~ 자꾸 왜 쳐~"
 그러자 남자아이가 싱긋 웃으며 말했어.
"내가 그런거 아니야 ! 바람이 불어서 그랬어."

 그 순간 골목 끝에서 아주 느린 속도로 불어 온 바람이 나를 휘감고 지나가는 게 느껴졌어. 언제 들이켰는지 모르게 몸 속에 스며드는 미세먼지처럼, 어른이 되가며 마음 속에 쌓여오던 것들이. 바람과 함께 날아가버린 것 같았어.

 있잖아. 나도 그랬나봐. 바람이 불어서 그랬어.


| 연필로_강신강 skprojectka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