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
새벽녘 |
저녁 무렵이었다. 그렇지만 세상의 색은 오히려 지금이 새벽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차가웠다. 해가 구름에 가려져 안 보이는 것인지 아니면 이미 수평선 넘어로 넘어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멀리 보이는 시내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연기를 보기 전까진 아무 것도 알지 못했지만, 연기를 보고나자 모든 장면이 다르게 움직였다. 적의 공습이 시작되었다!
무작정 달린다. 하늘에서 굉음이 들린다. 전투기 소리가 상공을 가른다. 고개를 들어 그 실체를 확인하려는 순간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폭발이 일어난다. 뛰어봐야 소용없다는 사실을 알아 차리고 근처 카페로 피신한다. 대여섯명의 사람들이 이미 카페에 몸을 숨기고 있다. 서로를 부둥켜 안고 벌벌 떨고 있는 모녀가 보인다. 언젠가 본 적이 있는 얼굴이다. 그러나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 창가 근처 테이블에 몸을 바짝 붙인 채로 바깥 상황을 살핀다. 아직 지상군은 투입되지 않은 건가?
바로 그 순간, 유리창이 깨진다. 카페는 순식간에 비명소리로 가득 찬다. 그리고 그 소리를 쏟아지는 총알이 가른다. 누군가 총에 맞아 쓰러진 것 같다. 길고 높은 소리가 다시 갈라진 공간을 메꾼다. 테이블 아래로 몸을 숨긴다. 형광등이며 컵이며 카페 안의 모든 것이 산산조각 난다. 그리고 정적.
발소리가 가까워진다. 이내 문이 열린다. 적인가? 아니면 다른 누군가? 다시 비명소리. 아까 그 여자아이의 목소리인 듯 하다. 다시 시작되는 난사. 적이다. 젠장. 살 수 있을까? 들키고 말겠지?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죽은 척하기로 한다. 웅크리고 있던 몸을 움직여 배가 땅에 닿는 자세로 엎드린다. 눈을 감고 호흡을 최소화 한다. 숨을 쉬기 위해 움직임을 멈추지 못하는 폐가 야속하다. 멈추고 싶다. 또 다시 정적.
적들의 대화 소리가 들린다. 알아들을 수 없다. 카페를 돌아다니는 것 같다.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 온다. 귀를 땅에 대고 있어서 진동이 느껴진다. 진동이 온 몸으로 번져 더욱 떨려온다. 제발. 제발. 멈춰라. 그냥 가라.
'철-컥' 장전소리.
차가운 것이 이마에 단다.
"이 새끼 이거 안 죽었네"
눈이 저절로 떠진다. 총구가 미간을 향하고 있다.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은데 말이 안나온다. 미련, 후회, 절망... 모든 감정과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그 찰나의 순간, 평소엔 죽어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죽는 것이 몸서리치게 싫은 일이라는 것을 느낀다. 내가 없이 남겨질 시간이 너무 아깝다.
' 피 ---- 슉 '
머리를 관통한다. 아프지 않지만 얼굴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는 게 느껴진다. 어둡다. 어둠 가운데 생각만이 존재한다. 죽는구나. 나의 생각이 어디론가 전송되어 이어질까? '나'는 어떻게 될까? 천국이든 지옥이든 뭐든 간에 뭐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없겠지? 죽고나면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가겠지? 정말 아무 것도 없을까? 아무 것도 없다는 그 관념조차 없는 그런 세상?
생각의 빛이 흐려진다. 어릴 적 집에 있던 텔레비전을 끌 때 처럼, 수평선의 빛이 어둠을 잠시 가르더니 툭하고 꺼진다. 죽음.
... 눈을 뜬다. 어둠. 파란 커텐 틈 사이로 푸른 빛이 들어온다. 새벽이라는 것을 직감한다. 꿈이었구나. 시간을 본다. 6시 27분. 이것저것 하려면 지금 일어나서 준비해야한다. 지난 밤 내일부턴 일찍 일어나 하루를 좀 더 알차게 보내자고 다짐했는데... 졸리다. 추워서 일어나기가 더욱 싫어진다. 이불을 다시 뒤집어 쓴다. 이내 다시 잠이 든다.
글을 쓴 사람 : 연필로(강신강)/yeonphilo@naver.com